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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모레면 서른

yellowbag 2022. 1. 8. 18:18

  내일모레면 서른이 된다.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가던 날의 풍경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 날에 대해서라면 재작년의 12월에 이미 쓴 글이 있다. 그 글의 일부를 옮겨본다.

19, 라면 역시 19세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내 19살의 12월은 혼란스러웠고, 나는 그때 죽고 싶다는 말을 텀블러에 정말, 정말 많이 썼는데, 그건 연애 때문이었다. 연애 때문에만 죽고 싶었던 건 아니겠지만 연애 때문에도 죽고 싶었던 건 분명하다. 9월에 만난 사람에게 10월에(그러니까 수능 직전에) 차였는데도, 12월까지도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럴 때의 '죽고 싶다'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지 않는다면) 죽고 싶다'는 뜻이고, 그건 곧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있도록) 살고 싶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는 그때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열아홉 살의 마지막 날에 나는 북촌에 있었다. 열아홉 살에만 할 수 있는 일을 마지막으로 하고, 십 대와는 영원히 작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19금 영화를 보러 갔다. 홍상수의 북촌방향이었다. 그건 나를 10월에 찬 사람이 봤다고 말했던 영화이기도 했다. 씨네코드 선재에 그때 처음 가봤는데, 영화는 기대했던 것만큼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나와서는 어쩐지 술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동네로 돌아와 친구를 불러냈고 친구가 또 자기 친구를 불러냈고 그렇게 셋이 호프집에서 맥주를 들이키면서 스무 살의 카운트다운을 티비로 지켜봤다.

  소박하지만 이보다 더 나을 수도 없을 것 같은 십대와의 작별이었다. 그렇다면 이십 대와의 작별은 어때야 하는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십 대와의 작별 같은 건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열세 살에는 서른 살에 자살하는 것이 버킷리스트였고(정말이다), 그 정도의 용기조차 내게 없다는 걸 알게 된 이십 대에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시간이 스물아홉에서 정지해버릴 줄 알았다. 뭐가 됐든 서른 살은 정말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서른이 코 앞으로 다가왔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 건 이번 크리스마스의 일이었다. 크리스마스에 나는 대학로의 작은 카페에 혼자 앉아있었다. 혼자 앉아있었다는 건, 카페에 나 홀로 존재했다는 뜻이 아니라, 수많은 커플들로 붐비는 가운데 내 테이블에만 아무런 일행이 없었다는 뜻이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고 나는 조금 외로워졌다. 세상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건 내 나이 때문은 아니었다(내가 몇 살인지 남들이 알 게 뭔가?). 하지만 나는 찬물을 뒤집어쓴 듯 문득 깨닫게 됐다. 한 시절이 언질도 없이 또 나를 지나가고 있다는 걸.

  같은 날 함께 서른을 맞이하게 된 아이유의 신곡 '드라마'는 이 서글픈 기분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도 한때는 그이의 손을 잡고 내가 온 세상 주인공이 된 듯 꽃송이의 꽃잎 하나하나까지 모두 날 위해 피어났지. 올림픽대로 뚝섬유원지 서촌 골목골목 예쁜 식당 나를 휘청거리게 만든 주옥같은 대사들. 다시 누군가 사랑할 수 있을까 예쁘다는 말 들을 수 있을까. 하루 단 하루만 기회가 온다면 죽을힘을 다해 빛나리." 그러게 말이다. 내가 온 세상 주인공이었던 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열아홉의 마지막 날 갔던 씨네코드 선재도 이제는 없고, 함께 맥주를 들이키던 친구와도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 서글픔 뒤에 밀려오는 심상함이다. 한 시절이 지나갔으니 김광석의 노래라도 들으며 상실을 애도해야 할 것 같은데, 좀처럼 그런 마음이 되질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하루를 보내려고 노력하기도 전에 벌써 아무렇지 않은 하루가 다 가고 있는 것이다. 택시에서 흘러나오던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술 취해 눈물을 쏟았던 스무 살의 어느 날, 이미 오늘 치의 슬픔은 다 털어버렸다는 듯이.

  그러니까 나이를 먹는다는 건 무수한 이별을 맞이했고 또 맞이해야 한다는 뜻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별에 굳은살이 배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다가 알게 된 사실 하나. 위에 인용한 '드라마'는 올해 말 발매된 아이유의 신곡인데, 그렇다고 해서 아이유가 올해 이 노래를 쓴 것은 아니다. 아이유는 이 노래를 스무 살에 썼다. 그리고 앨범소개에 덧붙이기를, "종종 비슷한 감성의 곡을 써보려고 시도해 봤지만 이미 나에게 지나간 챕터를 흉내만 내는 것 같아서 그만뒀다." 이별을 요란하게 기념하는 것도 서른을 예비하는 사람에겐 이미 지나간 챕터다.

  스물아홉 살의 마지막 날에도 스물아홉 살에만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건 이십 대와의 멋진 작별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란 거의 없다. 스물아홉에 할 수 있는 일은 대개 스물여덟에도 할 수 있었고 서른에도 할 수 있을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유의 노래 가사처럼 "하루 단 하루만 기회가 온다"면 그건 스물아홉의 12월 31일일텐데, 죽을힘을 다해 빛날 의지도 능력도 12월 30일의 나에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스물여덟에도 할 수 있었을, 그리고 서른에도 할 수 있을 일들을 또 하루치 성실하게 해내는 수밖에. 하루치 읽고, 하루치 보고, 하루치 쓰고. 그러고 나면 내일모레의 나는 서른이 되어있을 것이다. 서글프지만, 심상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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