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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탄소발자국의 궤적에 불과하지만
- 연극 <렁스>* -
좋은 극의 문장부호는 대체로 물음표의 모습을 하고 있다. 연극열전의 많은 작품이 그렇듯, <렁스> 역시 예외는 아니다. <렁스>의 두 등장인물이 극 내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은 극이 끝난 뒤에도 관객에게 오래 남는다. "우리는, 좋은 사람일까?"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너무 모호하다면, 좀 더 분명하게 '무해한 사람'으로 바꿔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지구에게든 타인에게든, 완벽하게 '무해한 사람'이 되기란 불가능하다.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일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듯, 남자와 여자가 의지와 상관없이 서로를 상처입히고 남자의 약혼녀를 상처입히듯,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는 어느 정도 유해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렁스>의 언어로 다시 바꿔 이야기해보자. 우리가 걸어왔고 걸어갈 길은, 비유적 의미든 문자 그대로의 의미든, '탄소발자국**'의 궤적이다. 무대 앞 쭉 늘어선 신발들이 그 탄소발자국을 형상화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걸어가는 일을 멈출 수 있을까? 역시 비유적 의미든 문자 그대로의 의미든, 무해한 사람이 되기 위해 여자의 말마따나 자살하는 것이 정답일 수 있을까? 탄소발자국의 끝에서 혼자 남은 여자의 마지막 대사. "어쨌든, 사랑해." 그 모든 발걸음이 나를 "어쨌든,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는 세계로 데려다준다면, 그건 정말 걸어볼 만한 길이 아닐까.
<렁스>의 질문에 대한 내 짧은 답은 이렇다. 우리는 영원히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이기 위해 불가능을 꿈꾸는 세계가 바로 사랑의 세계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지구의 상황은 어쩔 수 없이 더 나빠지고 내 주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또 상처받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하기 때문에 노력하고 노력하기 때문에 사랑할 것이다. 부단한 노력의 끝에서, "어쨌든,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도록.
* 210814, 이진희 오의식
** 개인 또는 단체가 직접, 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온실 기체의 총량.
(210814 쓰고 220108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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