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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일의 말마따나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네가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눈물이 나는 날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그런 날이 몇 번 더 반복되었고, 그럴 때마다 이 미완의 글을 꺼내보았지만, 마무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나의 사랑이자 자랑을 만나고 온 날, 문득 이 글을 완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세상에 노래란 게 왜 있는 걸까? 너한테 불러줄 수도 없는데." 너에게 불러줄 수 있는 노래를 나는 부르고 싶은 것이다.


나의 사랑이자 자랑을 위한 비상약

- 김승일의 <나의 자랑 이랑> -

 

  시를 왜 읽을까? 이런 난처한 질문을 종종 맞닥뜨린다. 이 질문에 대한 완전한 대답을 하자면 글이 훨씬 길어지겠지만, 우선 이렇게만 말해두자. 나에게 시는 두 가지 부류다. 나를 무너뜨리는 시와 그렇지 않은 시. 보편적으로 좋은 시는 단연코 전자이고, 언어로 규정된 세계/자아의 허구성을 무너뜨리고 싶을 때 나는 시를 읽는다. 그런데 보편적으로 좋은 시가 항상 나에게도 좋은 시인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싶은 날은 시가 필요하지만, 정말 무너져버린 날에는 시조차 피로하다. 그런 날에는 좋은 시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대신 비상약 몇 알을 털어넣는 마음으로 이런 시를 꺼내 읽는다. 김승일이다.

넌 기억의 천재니까 기억할 수도 있겠지
네가 그때 왜 울었는지. 콧물을 책상 위에 뚝뚝 흘리며,
막 태어난 것처럼 너는 울잖아.
분노에 떨면서 겁에 질려서.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네가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는 날이면, 세상은 자주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투리 같고. 그래서 우리는 자주 웃는데.
그날 너는 우는 것을 선택하였지. 네가 사귀던 애는
문밖으로 나가버리고. 나는 방 안을 서성거리며
내가 네 남편이었으면 하고 바랐지.
뒤에서 안아도 놀라지 않게.
내 두 팔이 너를 안심시키지 못할 것을 다 알면서도
벽에는 네가 그린 그림들이 붙어 있고
바구니엔 네가 만든 천가방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좁은 방 안에서,
네가 만든 노래들을 속으로 불러보면서.

세상에 노래란 게 왜 있는 걸까?
너한테 불러줄 수도 없는데.
네가 그린 그림들은 하얀 벽에 달라붙어서
백지처럼 보이려고 애쓰고 있고.
단아한 가방들은 내다 팔기 위해 만든 것들, 우리 방을 공장으로, 너의 손목을 아프게 만들었던 것들.
그 가방들은 모두 팔렸을까? 나는 몰라,
네 뒤에 서서 얼쩡거리면
나는 너의 서러운,
서러운 뒤통수가 된 것 같았고.
그러니까 나는 몰라,
네가 깔깔대며 크게 웃을 때
나 역시 몸 전체를
세게 흔들 뿐
너랑 내가 웃고 있는 까닭은 몰라.
먹을 수 있는 걸 다 먹고 싶은 너.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오리발 같아 도무지 신용이 안 가는 너는, 나무 위에 올라 큰 소리로 울었지.
네가 만약 신이라면
참지 않고 다 엎어버리겠다고
입술을 쑥 내밀고
노래 부르는
랑아,

너와 나는 여섯 종류로
인간들을 분류했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아
막 박수치면서,
네가 나를 선한 사람에 
끼워주기를 바랐지만.
막상 네가 나더러 선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 나는 다른 게 되고 싶었어. 이를테면
너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
나로 인해서,
너는 누군가의 자랑이 되고
어느 날 네가 또 슬피 울 때, 네가 기억하기를
네가 나의 자랑이란 걸
기억력이 좋은 네가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얼쩡거렸지.

- 김승일, <나의 자랑 이랑>

  이 시가 그려내는 풍경은 분명하다. 화자의 (아마도 가수 이랑일) 친구가 신산한 삶을 견디다 못해 울어버렸다. 화자의 존재 자체가 친구를 안심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두 사람은 그런 사이는 아니다. 이 상황에서 화자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친구에게 화자가 (존재만으로 위로가 될만큼) 중요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화자에게 친구는 그런 자랑이 된다는 것을  친구가 기억해내는 것. 그리하여 친구가 또 신산한 삶을 살아나갈 수 있을만큼의 힘을 얻는 것.
  김승일의 마음은 애틋하고 달콤하지만, 나는 이 시가 보편적으로 좋은 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시는 나를 무너뜨리지 못한다. 그런데 종종 이런 시가 필요해지는 날이 있다. 이를테면 이랑의 노래처럼, "우리가 먼저 죽게 되면 일도 안 해도 되고 돈도 없어도 되고 울지 않아도 되고 헤어지지 않아도 되고*"라고 말하고 싶어질 때. 그럴 때 이 시는 무너진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그건 아마 김승일이 이랑에게 해주고 싶었던 바로 그 일이었을 것이다.
  이 시를 알게 된 후, 나는 "나의 사랑이자 자랑"이라는 표현을 편지에 종종 쓰게 됐다. 편지의 수신인이 위태로워 보일수록 그 표현을 쓰는 나의 마음도 절박해졌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투리" 같이 불가해한 세상 속에서, 내 언어만은 네가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내 언어가 너를 단단히 붙들어줄 수 있기를. 물론 그런 편지를 쓰는 나 역시 "막 태어난 것처럼" 울고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네가 "나의 사랑이자 자랑"이라는 표현을 쓰고 나면, 역설적으로 나 역시 너의 사랑이자 자랑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가장 불안했던 시절을 견뎌왔다.
  나의 사랑이자 자랑들은 이제 사회 곳곳에서 제 몫을 착실히 해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리 착실한 어른이라도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 먹고 마시는 것이나 잠을 자고 움직이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무기력감이나 공포심이 찾아"올 때가 있지 않을까**. 그때 나보다 나의 마음을 적확하게 옮겨 낸 김승일의 언어를 네가 기억해낼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자. 시를 왜 읽을까? 드문 일이지만, 어떤 시는 세계/자아의 전복을 꿈꾸지 않으면서도 저 스스로의 힘으로 누군가의 비상약이 되는 데에 성공한다. 김승일의 <나의 자랑 이랑>은 나눠도 양이 줄지 않는 몇 안 되는 내 비상약이다. 그리고 이 글은 비상약을 나누면서 그 복약법을 일러두고 싶은 노파심으로 씌어졌다. 쓰고 나니 도무지 좋은 글은 못 되는 것 같아 민망하지만 어쩌겠는가. 보편적으로 좋은 글이 항상 네게도 좋은 글인 것은 아니리라는 믿음으로 뻔한 사족을 덧붙여 본다. 김승일에게 이랑이 그러했듯, 나에게 너는 나의 사랑이자 자랑이야. 네가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떻게 하든, 나는 처음부터 "너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거야.
 
 
* 이랑, '환란의 세대' 중
** 이랑,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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