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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병(-病)을 앓는 그런 날에는

yellowbag 2023. 1. 9. 15:09

꽃병(-病)을 앓는 그런 날에는

- 한인준의 <그런 날> -

 

  한인준의 많은 시들은 시이면서 동시에 시인의 시작노트이기도 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어떤’ 말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사람들”(<어떤 귀가>)나 “어쩌면 우리는 구름을 구름 ‘같다’고 불렀던 사람들”(<확신>)과 같은 구절에서 시인의 말에 대한 고민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인에게는 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시인으로서는 도무지 발화 불가능한 것이어서, 입을 여는 순간 그는 곧바로 “저기로 가도 저기를 여기라고 부르고 말”(<위로>) 것이다. 시인은 그것을 안다. 알면서도 입을 연다. 한인준의 많은 시들이 바로 그런 순간들을 다루는 데에 바쳐진다. 이 역설, 실패하고 말 것을 알면서도 기어코 무언가를 말하고 말 수밖에 없는 시인의 이 역설을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한인준의 다음 시가 이 역설의 구체적인 풍경을 더듬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 같다. <그런 날>을 읽는다.

 

그런 거 있잖아.
그런게 뭔데.

서로 마주 보고 앉은 탁자에서 ‘그런’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왜 자꾸 나는 당신에게 ‘그런’ 걸 말하고 싶은 걸까?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라니.

나는 탁자 위에 놓인 빈 꽃병을 본다
당신은 탁자를 치운다
거실 바닥에 그 빈 꽃병이 놓인다
말없는 당신이 방으로 들어간다. 거실이
뒤따라간다.

우두커니 나는 혼자서 다른 ‘꽃병’을 떠올린다. 떠올린 ‘꽃병’에 물이 담긴다
‘꽃병’이
부서진다. 나는 젖은 채로 새로운 ‘꽃병’을 사러 나간다
돌아가지 않는다.
길거리에 골똘히 서서 ‘꽃병’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꽃병’ 탓을 한다

‘그런’ 걸 설명하지 못하거나
‘그런’ 걸 설명했다고 착각하기도 해서

마르지 않은 채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만들고 부서뜨린 수많은
‘꽃병’들, 오늘은 모두가 젖어 있다

 

  한인준의 화자는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싶어 한다. 빈 꽃병을 보고 있으니, 꽃병에 꽃을 꽂아보자는 제안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일 수 있다. 혹은 꽃이 꽂혀있는 풍경을 미리 보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설명을 위해 그는 따옴표들을 자주 호명한다. 따옴표 속에 들어있는 것은 물론 화자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을 지시하려는 언어적 표현이다. ‘지시하는’이 아니라 ‘지시하려는’이다. 곧바로, 이 설명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고 만다. 화자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은 설명될 수 없거나 혹은 설명되었다고 착각할 수밖에 없는, 말하자면 빨간 스페이드 카드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어떤 체계를 벗어나기 때문에 영원히 그 존재를 말할 수 없거나 혹은 빨간 하트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는 것. 이런 뜻밖의 사건을 만났을 때 우리의 언어는 완전히 무력하다. ‘그런’ 것은 영원히 그런 것에 가닿지 못한다.

  이제 꽃은커녕 꽃병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말없는 당신”처럼 입을 다물 수도 있겠지만, 시인은 멈추지 않는다. 거실이 당신을 따라 들어감으로써 일상적인 풍경이 사라진 혼자만의 사유 공간에서, 시인은 대신에 자꾸 새로운 다른 언어들을 떠올리고 “떠올린 ‘꽃병’에 물”을 따른다. 물론 거기에도 꽃은 꽂힐 수 없다. 빨간 스페이드 카드로 이야기하자면,이것은 ‘빨간 하트’의 실패 후에 ‘검은 스페이드’를 떠올리는 격이다. 그러니 새로운 ‘꽃병’도 부서질 수밖에. 이러한 만들고 부서뜨림의 무수한 반복 속에서 잔뜩 젖은 화자가 무엇인가를 간신히 건져낼 수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꽃병’들을 탓하면서 또 언어를 탓하면서 그렇게, 시인은 시를 쓴다. 그러니까 한인준의 <그런 날>은 시이면서 동시에 훌륭한 시작노트인 셈이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시인의 꽃병에 대한 불가능한 천착은 차라리 어떤 병(病)에 기인한 것처럼 보인다. 시인들은 굳이 ‘꽃병’을 깨트리고 그 물로 자신을 적시는, 그 물이 마르지도 않은 몸으로 길거리를 헤매며 쓸데없이 감기에 걸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꽃을 말하기 위해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스스로 열에 달뜬, 말하자면 저 혼자 꽃병(-病)에 걸린 사람들이다. 시를 쓰지 않는 우리로서는, 또 “말없는 당신”으로서는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종족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이 꽃병의 만들어짐과 부서짐에 있어 무관한 것일까? 시의 마지막 문장, “오늘은 모두가 젖어 있다.” 젖은 줄 몰라도 우리는 이미 젖어 있다. 젖었으니까 때로 부지불식간에 추워지기도 한다. 시를 읽는다고 몸이 마르는 것은 아님을 알면서도, 그럴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시를 읽는다. 시를 쓰는 이들도 시를 읽는 이들도 사실은 다 같이 꽃병을 앓는 셈이다. 어쩌겠는가, 앓는 자에게만 세계의 바깥은 제 모습을 드러내나니, 그저 최선을 다해 있는 힘껏 앓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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